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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집에서의 추억과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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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민석 (203.♡.249.135)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1회   작성일Date 26-05-01 16:50

    본문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작품이요, 애증의 대상일 수 있는 영화는 나에게는 명절마다 가는 시골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본가에서는 거의 쳐다도 보지 않은 TV는 시골집에서는 그것을 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되곤 했다.
    침대도 화장실도 없는 낯선 공간, 일찍이 돌아가신 친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영정사진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밖은 지나가는 차 하나 보기힘든 산으로 둘러쌓인 망망대해나 다름 없었다.
    리모컨의 버튼을 하염없이 눌렀다. 진득하게 채널을 돌리지 않고도 시간을 보낼 프로그램을 찾아 지난 명절에 리모컨을 들고 버튼을 누른 나를 떠올렸다.
    그렇게 채널을 찍어 맞추다 얻어걸린 무료 영화 채널을 확인한 후, 손가락을 신중하게 하나씩 채널을 옮겼다.
    어떤 영화는 시작도 하지 않았고 또 어떤 영화는 중반부를 또 어떤 영화는 결말에 다다랐다.
    수많은 장르로 구별되는 영화는 내 자신의 취미에 부합하는 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 중 지금 생각나는 것이 영화 <에이리언>시리즈 이다. 왜 이것이 기억이 나냐면, 매우 잔인하고 끔찍하기 때문인 것 같다.
    피가 용솟음 치고 장기가 튀어나오고 그 속에서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튀어나와 인간을 괴롭힌다.
    이 영화를 진지하게 본 것도 아니다. 단지, 시간을 보낼 영화를 찾다가 우연히 이런저런 장면들이 눈에 띈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강렬한 경험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이것을 만든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진지하게 만든걸까? 더불어 공포영화라는가 그런 것들도 마찬가지로."

    그런데, 영화를 진지하게 보는 눈이 생기고 난 이후로 이 영화가 어떤 메세지를 보내고 있는지 명확해 졌다.
    바로, 생물학에 기반한 진화에 대한 극단적 관점을 기술한 것으로써 인간 자체에 대한 모습과 그 모습에서 투영된 정상적 신체에 대한 물음에 다름 아니다.
    진화론적 관점이 과거 진화설이라는 비하적 관점에서 벗어나 하나의 진리나 사실로 여겨지면서 나타나는 유기체에 대한 결과적 사실로써 도출될 수 있는 기원과 원인이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진화의 결과가 가리킬 미래의 유기체적 모습은 자연적 변화 또는 인위적 변화를 통해 결정된다.
    진화론은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 진화의 결과는 가감없이 지금 모두 보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듯, 공상과학 영화 <에이리언>에서 나타난 비극은 인간의 진화적 한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시도를 감행한 결과다.
    에이리언의 비극은 사이보그 데이빗의 순수하고도 잔인한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인간의 창조주라고 할 수 있는 설계자라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대면한 결과 역시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인간의 고도의 지적행위의 결과와 그에 따른 호기심과 질문은 그 자체로 붕괴 지점이 있다.

    그렇다면, 에이리언의 진화론적 허무주의에 대해서 단순히 경고와 같은 미래에 대한 암울한 예측이라는 것이 내가 유희로써 즐기던 영화에 대한 해석의 변화인가?
    시간을 보내려고 간절히 찾아 헤매이던 순간 보여진 잔인한 장면으로 남아 있는 그런 영화가 다른 관점에서 보이는 것이 다인가?
    다음 편에서 이러한 의문을 더욱 심오하게 전개해 보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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