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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학교에서 느낀 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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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서우 (123.♡.33.101)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23회   작성일Date 26-05-25 23:48

    본문

    오늘은 새말새몸짓 강의가 있는 날이다. 분명히 월요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나 잠잠하다. 혹시나 해서 함평에 거대 정전이 발생한 것은 아닌지 뉴스를 찾아볼 정도였다. 곰곰이 따져보니,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고로, 교수님은 강의 대신 부처님을 만나러 가신 모양이다.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삼성전자의 이재용이 우리 집에 오신 날이라면 그정도 약속은 바로 취소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텅 빈 시간 동안 기본학교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무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딱히 할 일도 없었거든. 


    내가 바라본 기본학교의 풍경은 무위라는 공기로 채워져 있었다. 이는 기본학교의 교장선생님인 최진석 교수님이 지향하고 원하시는 배움의 분위기였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인간이라는 동물은 같은 공기, 음식을 먹어도 각자 다른 걸 뱉지 않던가. 그러니 이 무위라는 흐름과 정확히 정반대의 자세를 취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을 붙이자면 청강생 이슈다.


    우리 기수 중 한 명이 3차 면접에서 탈락한 자신의 배우자를 데려왔는데, 최진석 교수님께서는 특유의 너그러움으로 그분을 청강생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셨다. 그러자 몇몇은 마치, 자기 도시락에서 제일 좋은 반찬을 빼앗긴 것 같은 표정으로 반발했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했다. 자신은 1차 에세이, 2차 에세이, 3차 면접을 뚫고 들어왔는데, 저 사람은 배우자라는 이유 하나로 기본학교의 입장권을 손에 쥐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달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1차, 2차 에세이와 3차 면접의 결과만 놓고 보면 별 다른 차이가 없다. 차이라고 해봐야 한 끗, 정밀하게 측정하자면 0.02 끗 차이 정도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매력이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니 청강생이라는 존재가 한 명 늘어났다는 건, 나에겐 부당한 특혜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생각을 공유해줄 머리 하나가 추가된 것이었다. 


    무엇보다 기본학교의 룰을 정하는 주체는 결국 최진석 교수님이다. 그분이 청강생을 허락하셨다면, 우리 기수에게 만큼은 새로운 룰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룰을 충실히 따르는 의미에서 청강생을 우리 기수의 일원처럼 받아들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햇다. 물을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네모가 되고,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글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교수님이 보여주신 무위의 자세를 우리도 고스란히 본받으면서 경험하고 체험해볼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물론 내 주장에 대한 몇몇의 반응은 냉랭했다. 누군가는 나를 현실감각이라고는 1도 없는 이상주의자로 보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체제 앞에 넙죽 엎드리는 전체주의자처럼 보았다. 단언컨데, 한 인간이 어느 한 순간에 이상주의자와 전체주의자로 동시에 보여지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보통은 둘 중 하나 하기에도 빠듯한데, 나는 그 날 그걸 동시에 해냈다. 물론 박수는 받지 못했지.


    물론 나는 그 시선들에 크게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소 건방지고 오만한 마음이지만, 내 눈에 그들은 기본학교가 어떤 공기로 채워져 있는지, 권리란 무엇인지에 대해 들여다 보지 못한 사람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옹졸한 우월감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손바닥 위에서 조그맣게 굴릴 뿐이었다.


    여기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우월감을 주머니에 다시 넣어야 했다. 나의 주장은 힘을 잃었고, 나는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권리에 대해 생각해봤기 때문이다. 


    권리라고 하면, 당연히 누려야 할 무언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권리(權利)의 한자만 보면 이익을 꾀한다고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말하는 권리는 자신의 이익과 자유를 주장하는 이기적인 태도로 여긴다. 주로 갑질이 일상인 사람들이 뱉는 논리다. "내가 손님인데! 이게 내 권리야!" 같은 식이다. 하지만 이는 권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권리라는 말은 '도리에 맞다'인 영단어 right를 번역하면서 나온 말이다. 그리고 right를 권리로 번역한 사람은 후쿠자와 유키치다. 기본학교 칭구들이라면 요시다 쇼인, 후쿠자와 유키치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과거 일본 만 엔권 지폐의 주인공. <학문의 권장>의 저자. 그 후쿠자와 유키치가 맞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번역한 권리는 '도리를 꾀함으로 다져진다.'에 가깝다. 다시 말해, 법률이 정해지면 그 룰을 따랐을 때에야 비로소 어떤 행동이 허용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어떤 행동이 허용된다.'라는 말은 곧 자유의 가능성이다. 여기서 권리는 두 갈래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우리는 왜 이런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권리로 인권, 자연권 등등이 있겠다. 두 번째는 이미 만들어진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의 가능성이다. 


    두 번째 권리에 대해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내 자동차가 초록불에 교차로로 진입하는 건, 룰을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교차로를 안전하게 지나권 권리인 자유를 얻게 된다. 만약 다른 차가 끼어들어 내 차를 박았다면, 나는 그 규칙을 근거로 내 권리를 방어할 수 있다. 고로, 두 번째 권리는 단순 right가 아니라 주장권이나 청구권 정도로 볼 수 있겠다. 


    문제는 몇몇 사람들이 이 권리를 무한한 인권처럼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성설설에 입각한 것으로 보이는데, 인간은 본디 선한 존재이므로 개인의 욕망 또한 마땅히 옳은 것이라 전제하는 것이다. 이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지배하는 진상들이 내세우는 논리와 유사하다. 자신은 선하고 옳은 존재이므로 자신의 욕망에 의거한 요구사항 또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자 자유라고 바라보는 것이다. 


    여기서 에드먼드 버크가 바라보는 권리는 다르다. 이는 개인의 주관적 판단,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국민의 역사와 습속 내에서 묻어나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권리는 주관적인 욕망의 무한한 표출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규칙들을 근거로 하여 하나하나 확인될 때에야 국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일정 범위 내에서 정해지는 것이다. 


    나에게 이 논리는 무위를 현대적으로 그려낸 영국의 불문헌법 체계로 보여진다. 성문화된 헌법전이 한 권도 없음에도, 오랜 관습과 판례의 누적만으로 묵직하게 굴러가는 체계. 명문 조항으로 국민을 윽박지르지 않으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사회. 이것이 어쩌면 무위의 한 형태가 아닐까 싶다. 물론 영국인들이 지적으로 게을러서 헌법전을 만들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나는 이에 반박할 정도로 지식이 갖추어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은 없다. 다만 그 게으른 세상이 수백 년 동안 지속되었고, 세계 대전에서 모두 승리한  국가라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내 주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최진석 교수님에 의하여 우리 기수에 새로운 규칙이 정해졌다면, 우리는 먼저 그 룰을 충실히 따라야 하고, 그 위에 더 나은 습속을 갖추여 애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무언가를 정당하게 주장할 권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 주장이 힘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기본학교의 기본적인 규칙은 세 가지다. 수업을 듣고, 에세이를 쓰고, 산을 오르는 것. 그리고 권리란 정해진 룰을 온전히 따랐을 때에야 손에 쥐어지는 것이다. 그 청강생은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을 들었을 것이고 에세이도 부지런히 썼을지 모른다. 하지만 산은 오르지 않았다. 룰을 모두 이행하지 못한 셈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해진 룰을 완수하지 못했고, 그 룰을 이행하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그 분을 우리 기수와 똒같은 권리를 지닌 일원으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할 근거를 마련할 수 없었다. 


    물론 산에 오르지 않은 청강생을 비난하거나 비판할 마음은 없다. 청강생의 입학 자체는 기본학교의 대장인 최진석 교수님이 우리 기수에 정한 하나의 룰이므로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는 단 한 점의 변함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룰을 절반만 이행한 분을 우리 기수와 완전히 동등한 권리를 지닌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그 주장만큼은 미련 없이 거둘 수밖에 없었다. 권리라는 건, 선한 의도나 딱한 개인 사정만으로 슬그머니 쥐여주는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명시된 규칙을 끝까지 완수했거나, 적어도 완수하려 노력해본 자만이 비로소 떳떳하게 요구할 수 있는 무엇이다.


    기본학교에서 내가 어떨결에 들이마셨던 무위라는 공기는 그런 것이다. 아무런 규칙도 없는 무질서가 아니고, 사람을 옥죄는 억압적인 통제도 아니다. 강요 없이 최소한의 룰을 지키며 건강한 습속을 쌓아나갈 때, 그제야 진짜 권리가 슬그머니 피어나는 것이다. 무위라는 건 텅 비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가장 단단한 무엇이다. 


    아 그것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8시에 한 번, 9시에 한 번, 10시에 한 번 유튜브에 들어가 새로고침을 했다. 세 번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잠잠했다.


    교수님은 진짜로 부처님을 만나러 가신 게 분명하다. 그럼 나는 꿈나라에서 로또 1등 당첨 번호 좀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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