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인은 재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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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적으로 덜 성숙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 시인들은 하품을 부른다. 물론 짜릿하고 재미있는 한국 시인은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마치 광활한 은하계 어딘가에 UFO를 타고 다니는 외계인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처럼.
재미는 없지만 나를 위로해준 한국 시인은 있다. 유치환이다.
수많은 시집 중 유치환의 시집을 덥석 집어 든 이유는 단순하다. 최진석 교수님이 어느 방송에서 <생명의 서>를 낭독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냉장고를 향해 속절없이 끌려가는 싸구려 기념품 자석처럼 유치환의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읽게 되었다.
이 시집이 안겨준 위로는 단순하다. 나는 긴 시간 동안 전 여자친구들을 향한 깊은 죄의식과 자책감에 빠져 있었다. 연애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치환의 시를 읽어보니, 연애 스타일이 나와 상당히 유사해 보였다. '나만 븅신인 줄 알았는데, 설마.. 유치환 씨도..?' 같은 생각이랄까. 마치 낯선 땅에서 대한민국 사람을 만난 기분이랄까.
그런 느낌을 안겨준 시는 '모란꽃 이우는 날', '치자꽃', '행복', 산 1' 등등이다. 이 시들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 그가 어떤 방식으로 연애를 했을지 그려진다. 장담컨데, 여자친구를 마음 속의 환영이나 특정 이미지로 박제 해놓고, 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감정을 소비했을 것이다.
유치환의 '행복' 이라는 시에서 이 부분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라는 구절은 쌍방향 소통은 관심 밖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우체국 창문 앞에서 편지를 쓰는 행위 그 자체가 사랑의 완성이자 목적이다. 상대가 편지를 읽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내 사랑에 응답할 것인지는 관심이 없다. 그저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며 스스로의 감정에 도취하여 홀로 카타르시스를 누릴 뿐이다.
이 고립되어 있는 듯한 감정은 '산 1'에서 날 것으로 드러난다. 화자는 대지에 엎드린 산을 향해 "묵연히 명목하고 자위하는 너" 라고 부르며 자신과 동일시 한다. 외부 세계를 외면한 상태로 누구의 개입도 허락하지 않은 채, 스스로 고독을 탐닉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유치환의 시를 들여다 보면, 살아 움직이는 타자가 없다. 다시 말해, 그의 연애 스타일은 상대를 특정 이미지로 고정시켜 놓은 상태로 닫힌 방안에서 홀로 감정을 불태우는 것에 가깝다. 과거에 내가 했던 연애 방식과 매우 비슷하게 느껴진 이유다.
나는 연애와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바보다. (아, 생각해보니 연애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다방면으로 바보 같긴 했다.) 약간 미화하자면 순수했다. 학창 시절 여사친이 영화 보러 가자고 하면, 나는 눈치를 국에 말아먹은 얼굴로 외쳤다.
"둘이서만 놀면 재미없잖아? 내가 친구들 모아볼게!"
미스터리한 점은 나처럼 매력 없는 사람에게 목을 매는 여성이 꽤나 존재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전 여자친구 중 한 명은 나 때문에 정신과 상담까지 받으러 갔다. 내가 내 입으로 이런 일화를 늘어놓으면, 누군가는 가스라이팅과 데이트 폭력을 일삼는 악랄한 갱스터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든 나는 나름 순수한 인간이었다. 내 문제는 연락 두절이었다. 그래서 전 여자친구들은 매번 붉어진 눈시울로 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정도면 예쁘고, 똑똑하고, 착한데, 나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당시의 나는 말할 수 없었다. 태생적으로 바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무리 짱구를 굴려봐도 그녀에겐 결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다만 고백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당시 나는 여자친구에게 연락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무언가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힌 탓에, 최대한 많은 정보와 지식을 머릿 속에 쑤셔 넣어야만 했다. 활자를 읽지 않으면 초조해서 발작을 일으킬 지경이었다. 그렇게 나는 책을 잔뜩 쌓아놓고 15분 간격으로 미친 듯이 번갈아 읽었다. 책 뿐만 아니라, 주간지, 월간지, 학술지까지도 모조리 뜯어 먹었다. 그렇게 수집한 문장, 이야기, 지식들을 활용하여 더 나은 선택을 위한 나만의 철학과 생각을 레고 블록처럼 조립하기 바빴다.
그런데 이러한 대공사 끝에는 당혹스러운 부산물이 뒤따랐다. 바로 조립하고 남은 지식 찌꺼기들이었다. 책을 읽다가 묘하게 꽂혀서 메모장 한구석에 적어두긴 했는데, 도무지 내 끼워넣을 데가 없어 버려진 파편들.
나는 이 파편들을, 억울하게 방치된 여자친구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로 승화시키게 되었다. 평소 생사 확인조차 안 했고, 아무리 짧아도 2주에 한 번 꼴로 만났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만날 대마다 백과사전 두께에 달하는 묵직한 편지를 쥐어주곤 했다. 물론 그 편지에는 로맨틱함이나 애틋한 따위는 없었다.
편지 내용은 유치환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내 눈에 밟힌 그녀의 낡은 신발을 주제로 나불거리는 내용이다. 그녀의 키가 167cm라는 사실, 유난히 작은 손, 꽤 길쭉한 체형이라는 특성, 무릎부터 복숭아뼈까지의 길이를 통해, 발 사이즈를 도출한 뒤, 어떤 신발을 사주고 싶은지 생각하는 그런 보잘 것 없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항상 사과로 끝냈다. "편지를 쓰고 있는 와중에도 연락을 보지 않아 미안해. 그런데 어쩌겠어. 네 생각을 하는 게 그만큼 재미있는데.".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그녀의 낡아빠진 신발은 원래부터 꼬질꼬질한 빈티지 콘셉트로 디자인 된 명품 운동화였다.
여자친구와 살을 맞대는 역동적이고 끈적한 관계를 즐기는 게 아니라, 상대를 내 머릿속 액자에 가둬놓고 마치 관음증 환자처럼 지켜보기만 하는 연애 방식. 유치환의 시를 읽으며 나 같은 사람을 만난 반가움이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느낌의 시인이 한 명 더 있다. 윤동주다. 물론 윤동주는 나와 유치환의 연애 스타일과 같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그의 시를 읽어보면 '들여다 본다' 같은 구절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 부분에서 살을 맞대고 역동적인 관계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걸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헤르멘 하세는 키스 중독자였겠지. 조금 딴 소리지만, 이 지점에서 유치환과 윤동주 중 기본학교 에세이를 누가 더 잘 쓸 것 같냐명, 당연 유치환이다. 유치환이 윤동주보다 더 솔직하거든.
최진석 교수님은 시를 읽으면 생각이 확장된다고 하셨다. 물론 생각이 확장은 된다. 그런데 문제는 재미가 없다. 생각을 확장시켜주면서 재미있게 써놓은 시인들은 대체로 서양 사람들이다.
유치환은 재미없는 시인이지만 나를 위로해준 좋은 시인이지.
어쩌면 한국 시인이 재미 없는 이유는 내가 지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탓이겠지.
최진석 교수님처럼 한자 많이 알면 한국 시가 더 재미있어지려나?
그런데 한자 공부하는 게 더 재미 없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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