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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 타는 원숭이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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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서우 (123.♡.33.101)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3회   작성일Date 26-06-16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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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학교 정신에 가까운 인물을 꼽을 때 누군가는 헤르만 헤세가 그린 울적한 독일 소년이나,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그린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스페인의 과대망상증 환자를 꼽을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기본학교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존재는 털이 숭숭 난 상태로 구름을 타고 다니는 원숭이, <서유기>의 손오공이다. 생각해보면 최진석 교수님도 농담 삼아 구름을 타고 다닌다고 말씀하시지 않던가. 


    사실 <서유기> 원전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어릴 적 만화책으로 훑어본 게 전부다. 그럼에도 지금 <서유기>의 손오공에 대해 떠들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2년 전 유튜브 알고리즘을 떠들썩하게 했던 게임, <검은 신화 : 오공>의 스토리 영상을 주말 드마라처럼 부지런히 정주행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게임을 하기 위해, 게임 패드를 쥐어본 적은 없고 할 생각도 없다. <검은 신화 : 오공> 게임을 하는 것보다 스토리를 감상하는 게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손오공은 태생부터가 도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단한 왕족이나 이름난 성인의 제자, 또는 거대 가문의 후손도 아니다. 그냥 돌에서 툭 하고 튀어나왔다. 혈통이나 예법, 신분 같은 사회적 족쇄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존재다. 누군가 정해준 자리를 얌전히 기다리는 대신 자기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부르는 원숭이. "내 안에서 솟아나는 것을 살아보려 했다." 라는 헤르만 헤세의 문장을 온몸으로 실천한 존재에 가깝다.


    <검은 신화 : 오공>의 설정은 다음과 같다. 서역에서 경전을 가져온 공로로 투전승불이라는 고위직을 꿰찬 손오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천계의 지루한 관료주의에 신물을 느끼고 사표를 던진다. 고향인 화과산으로 내려가 조용히 은퇴 생활을 즐기려 했는데, 천계는 이 퇴사자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들은 군대를 보내 원숭이 일족을 무자비하게 학살한다. 이에 분노한 손오공은 혼자 천군과 맞서게 되는데, 이랑진군을 비롯한 요괴 왕들의 맹렬한 협공에 쓰러지고 만다. 그렇게 손오공의 육신을 여섯 조각의 근기로 흩어진다. 수백 년 뒤,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천명자라는 이름의 원숭이가 그 길을 나선다.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원숭이는 손오공이 아니다. 손오공이 남긴 유산과 기억을 줍고 다니며 전설의 의미를 완성해 나가는 원숭이다.


    무엇보다 손오공은 투전승불의 자리에 오른, 천계가 공인한 부처가 되었음에도 그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고 화과산에 돌아갔다. 여기서 함평에 자주 내려가는 기본학교 칭구들이라면 손오공의 뜻을 단박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검은 신화 : 오공> 1장의 악인 금지 장로는 특정 구조의 희생자다. 흑곰 요괴와의 인연으로 탐욕에 찌든 그는 수백 궤짝의 가사를 모으고 270세에도 건강하게 사는 노승이 된다. 겉으로는 불문의 권위를 두른 존재이지만 그 권위는 집착의 또 다른 모양이었다. 삼장의 금란가사를 보는 순간 그는 끝내 욕망을 감추지 못하고 관음선원을 불태운다. 관세음 보살은 죽어가는 그에게 묻는다. 어지하여 금란가사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냐고. 그러나 대답은 이미 알고 있다. 그는 불문의 기준, 즉 합의된 선 안에 살면서도 그 선을 한 번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겉으로 따랐을 뿐 안으로 따르지 않았다. 이것이 교수님이 말씀하신 유위에 가깝다. 자기 눈으로 보지 않고, 보여야 하는 대로 보는 삶.


    <검은 신화 : 오공> 2장의 컷신은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한 농부가 덫에서 구해준 여우와 함께 살다가, 어느 날 그 여우가 요괴의 본성을 드러내는 꿈을 꾼다. 잠에서 깨어난 농부는 여우를 죽인다. 이 장면 긑에 천계는 손오공에게 묻는다. "우월하고 열등한 것은 자연의 섭리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므로 함부로 관여할 수 없다. 그렇지 않냐, 손오공아"


    이것이 천계의 논리다. 요괴는 요괴, 원숭이는 원숭이. 서열은 자연이 정한 것이므로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진석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자연이라는 건 이게 아니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인 것이지, 누군가가 정해놓은 위계가 아니다. 천계의 자연은 사실 유위에 가깝다. 합의된 기준을 통하여 세계를 구분하고 억압하는, 가장 정교한 형태의 유위인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손오공의 머리에 남아 있는 긴고아는 형벌의 도구가 아니다. 이는 천계가 손오공을 끝내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승격시켰찌만, 본질적으로는 관리와 감시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손오공이 화과산으로 돌아간 이유다.


    3장의 황미는 더 노골적이다. 그는 미륵불을 모시던 시동 출신으로, 불문 안에서 자랐으나 불문의 핵심을 끝내 이해하지 못한 자다. 중생은 열등하다는 믿음을 품었는데, 중생에게 혜근이 있어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금선자, 즉 삼장법사의 전생과 매 생애 내기를 거듭한다. 황미는 중생의 탐욕을 이용해 자신의 몸이 찢기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논리를 관철하려 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집착이라는 가장 중생적인 굴레에 빠져버린다. 집착을 버리라는 불교의 핵심을 가르친 스승을 모셨으나, 정작 승부에 집착하며 타락한 것이다. 금선자는 그를 우스우면서도 가련하게 바라본다. 황미는 매번 승리했으나 자유롭지 않았다. 최진석 교수님이 말씀하신 공성이불거와 정확히 반대되는 삶이라 할 수 있다. 공을 이루고도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못한 자의 말로다. 


    4장은 결이 다르다. 배경은 요괴 일가가 지배하는 반사령이지만, 진짜 이야기는 사랑이다. 천계의 수군대장 천봉원수였던 저팔계는 항아에게 지나치게 들이댄 죄로 천계에서 추방되어 돼지의 몸으로 환생한다. 자줏빛 거미는 바로 그 저팔계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사랑했다. 그리고 그를 따르기 위해 스스로 불멸을 포기하고 지상으로 내려간다. 저팔계까 아홉 번의 환생을 거치며 방황하는 동안, 그녀는 계속해서 기다린다.


    둘이 다시 만났을 때 저팔계는 자기 혐오에 빠져 있었다. 더 이상 자신은 천상의 위대한 장군이 아니라 하찮은 돼지 요괴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자줏빛 거미는 말한다. 본인 또한 천상의 선녀가 아니라 추악한 거미일 뿐이라고. 천계의 기준으로 둘 다 하찮은 존재다. 하지만 그 기준 바깥에서 둘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았다. 세계를 보여지는 대로 보는 것이다. 저팔계의 돼지 형상을 보고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는 <검은 신화 : 오공>에서 자줏빛 거미가 유일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저팔계는 끝내 천명이라는 유위적 질서를 택한다. 서역 여행을 택하며 그녀의 손을 놓는다. 신들의 형벌이 두렵다면 뒤돌아 보지 말라는 저팔계에게 , 자줏빛 거미는 말한다. 사랑 앞에서 신의 형벌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다음에 만날 땐 뒤돌아 보라고. 그러나 저팔계는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검은 신화 : 오공>이 이 이야기에 붙인 노래 제목은 '불청(不聽)', 듣지 않는다는 뜻이다.  저팔계는 천명의 목소리만 들었을 뿐, 사랑의 목소리는 듣지 못한 것이다.


    5장의 우마왕은 이 이야기에서 가장 비극적으로 그려지는 인물이다. 그는 중요한 순간마다 무언가를 지키는 선택을 한다. 의형제를 위해 천군과 싸우고, 아내와 아들을 위해 손오공과 대결한다. 하지만 그 모든 선택은 파멸이었다. 천계가 선택하지 않은 자의 정은 어리석음으로 기록되었고, 천계가 정해놓은 질서 안에서는 사사로운 의리가 악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옳지 않아서 진 게 아니다. 천계의 기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 것이다. 


    그렇다면 손오공은 이러한 구조에서 어떻게 빠져나왔을까.


    손오공은 살아서는 긴고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천계는 그를 형식적으로 승격시켰으나 머리 위의 금속 고리는 거두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인식했고, 결국 죽음을 택한다. 이랑진군의 창에 고의로 맞아 치명상을 입으면서, 긴고아와 함께 육체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자신의 뜻을 새로운 그릇인 천명자에게 흘려보낸다.


    <검은 신화 : 오공>의 진 엔딩은 각 장에 숨겨진 보스들을 모두 쓰러트리고 부도탑의 이랑진군까지 넘어선 천명자는 손오공의 마지막 기억과 뜻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이랑진군은 말한다. "세간의 명성으로 그를 가둘 수 없고, 금고 하나로 그를 막을 수 없다는 걸" 그리고 천명자는 눈을 뜬다. 긴고아가 씌워지기 직전 눈을 뜬다.


    이 눈뜸이 전부다.


    합의된 기준을 따르라는 천계의 마지막 요구 앞에서 천명자는 보여지는 대로 본다. 긴고아가 무엇인지, 그것이 왜 존재하는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거부한다. 손오공이 죽음으로 열어놓은 자리에서 천명자는 살아있는 채로 같은 선택을 한다.


    노멀 엔딩의 천명자는 봐야 하는 대로 보았다. 천계가 원하는 대로 긴고아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진 엔딩의 천명자는 보여지는 대로 보았기 때문에 눈을 떴다. 


    구름을 타고 다니는 손오공과 최진석 교수님은 이 지점과 맞물려 있다. 그럼에도 기본학교 책 읽기 모임에 <서유기>가 선정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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