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 만들기 3>을 읽고 (함재봉, 에이치프레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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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 만들기>는 기본학교 친구들이 읽어야 할 책 중 하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국 사람 만들기 시리즈에서 가장 큰 변환점 안겨주는 건 3펀이라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기본학교 모임 때 더 유의미한 가치를 나누려면, 이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아이큐는 두 자리이지만, 이미 읽어본 내가 짤막하게 생각을 공유하기로 결정했다.
누군가는 핏대를 세우며 "야이 바보야. 왜 한국 사람 만들기냐? '정치란 무엇인가'를 써야지ㅉㅉㅉㅉ' 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굳이 쓴 이유는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나름 납득하게 될 것이다. 납득이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물론 한국 사람 만들기 4, 5편을 다 쓰고 나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8월 15일 전에 정치란 무엇인가도 쓸 예정이다.
무틍 이 책을 한 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근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에토스의 문제다. 그리고 조선이 망한 것은 대포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사람을 새로 만들 사상과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 만들기>는 1권에서 친중위정척사파의 뿌리를 캐기 위하여 송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2권에서는 친일개화파를 추적하기 위하여 도쿠가와 일본을 파헤쳤다. 3권에서는 친미기독교파의 기원을 찾기 위하여 16세기 제네바로 향한다. 갑신정변에서 청일전쟁 직전까찌, 그러니까 1884년에서 1894년까지 조선의 10년을 설명하기 위하여 칼뱅의 전기와 종교개혁사, 스코틀랜드 장로교 혁명, 네덜란드 공화국, 영국 청교도 혁명, 미국 건국사까지 훑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이 책을 읽다보면, "함재봉 교수님이 길을 잃으신 건 아닌가?"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조선말 정치사를 읽으러 왔는데 지금의 나는 제네바 장로회의 조직 구성까지 들여다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길을 잃은 듯한 우회로가 이 책의 핵심이다. 저자의 질문은 "조선에 무슨 일이 있어났는가?" 그 자체가 아니다. "조선에 들어온 것이 무엇이었는가?"에 가깝다. 1884년 이후 조선에 상륙한 미국 선교사들이 들고 온 것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었다. 칼뱅주의와 복음주의가 결합되어 있는 지극히 미국적인 개신교였다. 저자에 따르면, 이 개신교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자유주의를 이미 체화하고 있었다. 유럽에서 1,000년 묵은 가톨릭 봉건질서를 해체하고, 근대가 낳은 그 사상 체계가, 주자성리학이라는 조선의 봉건질서 앞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주자성리학이 고려의 불교 사회에 도전한 것처럼 개신교는 조선의 국교에 도전한 것이다. 저자는 이를 문명 충돌로 표현한다.
이 책의 진짜 메시지는 제목에 이미 들어있다. "한국 사람은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졌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인 (투표, 남녀공학, 한글, 문법, "하면 된다." 같은 근면과 규율의 윤리 등) 이 모든 것에는 제조 연월일과 제조 공정이 있다. 그 공정을 모르면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사는 것이다.
칼뱅이라는 우회로
4장과 5장은 사실상 책 속의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자자가 공을 들여서 세우는 대비가 하나 있다. 루터와 칼뱅이다. 루터의 종교는 사적 체험의 종교였다. 고난과 고뇌 끝에 얻어낸 믿음의 확신, 그 개인적 드라마가 루터교의 핵심이다. 반면에 칼뱅은 냉정하고 이지적이며 극단적으로 논리적인 제도 설계자였다. 그는 <기독교 강요>, <교회법규>로 가톨린을 대체할 새 교회의 이론과 제도를 통쨰로 설계했다. 교회 내 일체의 신분과 위계를 철폐하고 목사, 박사, 장로, 집사 네 직분만 남기고 그들을 교인의 선출로 뽑게 했다.
중앙에서 통솔하는 기구가 없으니 모든 사안은 협의와 토론과 투표로 정할 수밖에 없는, 철저하게 분권화되고 민주화된 체제였다. 저자가 인용하는 대목이 인상적인데, 루터는 만년에 정치적으로 체념한 시골 노인이 되었으나, 칼뱅은 만년에 세계적 인물이 되어 도처에서 개혁과 혁명의 동인을 제공했따. 사상이 국경을 넘는 것은 감정의 깊이가 아니라 제도의 이식 가능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칼뱅주의가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뉴잉글랜드, 그리고 조선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윧 .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저자는 나라별로 보여준다. 녹스의 장로교 혁명 이후 스코틀랜드는 유럽에서 문자 해독률이 가장 높고, 인구당 서점이 제일 많은 나라가 되어 흄과 아담스의 계몽주의를 낳았따. 네더란드는 세계 최강 스페인과 싸워 이기고 최초의 주식회사와 증권시장을 만든다. 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군주를 합법적으로 처형한다. 홉스가 "선동을 일삼는 1천명 도 안 되는 목사들을 설교 시작 전에 다 죽였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라고 이를 갈았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후혜가 "언덕 위의 도시"를 외치며 대서양을 건너 메이플라워 서약(종교적 목적으로 세운 세속적 시민정치 공동체)에 서명한다. 여기에 대각성 운동이 덧붙인 것이 복음주의, 즉 규율의 내면화다. 조선에 온 선교사들이 장착하고 있떤 소프트웨어의 사양서가 이렇게 완성된다.
아비규환과 신의 한수
이 책은 두 개의 조선을 나란히 보여준다. 하나는 무너지는 조선이다. 2장 '아비규환' 장이 그리는 19세기 조선은 답답하다. 인구 1만 명 이상 도시 거주자가 전체 2.5%, 같은 시기의 일본은 12~13%,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토지 생산성, 일해봐야 나라에 빼앗기니 오르지 않는 노동 능률, 관리 봉급이 밀리고 군인 배급이 끊긴 1882년, 조선의 행정기관인 의정부는 "나라가 나라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따."라고 실토한다. 이에 조정이 내놓은 대책은 근검절약 뿐이었다. 저자는 이를 지배층이 농본사회를 이상으로 삼는 성리학적 왕도정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증거로 읽었다. 선교사들의 기록으로 재구성한 민중의 삶은 더 처절하다. 머리(왕)과 팔다리(백성)은 말라붙고 가슴과 배(대관과 양반)만 터질 듯 부푼 사람의 그림으로 제 나라를 풍자하던 백성들, 급료 없이 수탈로 먹고사는 것이 제도화된 아전들, 한양에만 3천 명이 활동하며 공포를 팔던 무당들. 8장에 이르면 숫자가 말해준다. 국고의 쌀이 1873년 20만 석에서 1886년 1만 7천 석으로 줄고, 그 해를 마지막으로 조정은 재정 보고서를 발표하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만들어지는 조선이다. 1장 '신의 한 수'인데, 과장이 아니다. 1884년 12월 4일 달 밝은 밤, 잠자리에 들자마자 불려나간 알렌은 칼을 일곱 군데 맞은 민영익을 열네 명의 한의사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명주실로 꿰메 살려낸다. 고종의 절대적 신임을 얻은 알렌은 정변 넉 달 만에 조선 최초 근대식 병원 광혜원을 연다. 친일개화파를 몰락시킨 바로 그 정변이 친미기독교파를 탄생시킨 것이다. 1년 전 시카고발 워싱턴행 기차 안, 한복 차림의 보빙사에게 말을 건 감리교의 가우처 박사가 이틀 간의 대화 끝에 조선 선교를 결심하고 아펜젤러와 스크랜트의 파견으로 이어지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가끔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는 것.
3권이 변환점인 이유
1권과 2권을 을 보면 알 수 있다. 위정척사파는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했고, 개화파는 바꾸려던 것을 바꾸지 못했다. 둘 다 위로부터의 기획이었고, 둘 다 실패했다. 하지만 3권은 결이 다르다. 여기서는 처음부터 밑으로부터의 혁명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3장이 이 책의 심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87년 10월, 언더우드 작은 예배당에서 14명의 교인이 투표로 두 명의 장로를 뽑는다. 조선 역사상 최초의 선거다. 백정 박성준의 이야기는 이 혁명의 축이다. "어의" 에비슨이 백정촌으로 왕진을 온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가 개종하고 갑오개혁기에 백정도 갓과 망건을 쓰게 해달라는 청원을 올리고, 그의 아들 박서양은 훗날 의사가 된다. 양반 교인은 예배 전에 회중 앞에서 신분제를 비판하는 고백을 해야 했고, 신분과 무관하게 서로를 형제, 자매라 불렀따. 여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고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가르치겠다."는 선언과 함께 메리 스크랜튼의 여학교(이화)가, 여성 전용 병원 보구여관(이화의대 전신)이 선다. 그리고 한글. 지배층이 400년 간 외면해 문법도 띄어쓰기도 없이 방치되던 글자를 선교사들이 성경 번역을 위해 재발견하고, 언더우드가 1890년 최초의 조선어 문법서를 낸다. 저자는 이를 한글의 재창제라 부른다. 언더우드의 사택 사랑채에서 시작된 고아원 학교의 졸업생 명단에 김규식과 안창호가 있다는 사실은 이 밑으로부터의 혁명이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거쳐 3.1운동으로 이어지는 계보의 예고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과거 이런 의구심을 한 번 정도 품은 적이 있었다. "나 같은 바보가 어떻게 합격한거지..??" 어쩌면, 지금 여기서 다룬 내용이 그 질문의 답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무튼 이 대목은 기본학교 칭구들이 늘 붙들고 있는 질문을 더 깊게 파고들게 이끌어준다. 칼뱅주의가 유럽에서 봉건과 근대 사이의 사상적 분수령이었다면, 조선에서 개신교는 성리학적 봉건주의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촉매였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오늘 한국인의 교육열, 조직력, 평등에 대한 감각 상당 부분이 이 시기에 주조된 것이라면, 이 책을 읽지 않고 "한국 사람"에 대해 제대로 논하는 것이라 볼 수 없는 격이겠다.
잔인한 비교사
이 책의 또 다른 축은 비교사에 있다. 같은 시기 청나라는 3천 년 만의 변국이라는 위기의식 속에서 양무운동을 벌인다. "그들은 왜 그렇게 작으면서 그토록 강한다. 우리는 왜 이토록 크면서 이토록 약한가."라는 풍계분의 질문에서 출발해 해관을 세우고 병기창을 짓고 어린 유학생을 미국으로 보낸다. 하지만 유교 문명이 본체이고 서양 기술은 도구일 뿐이라는 중체서용론의 심리적 위안에 갇힌 개혁은 청불전쟁의 참패로 한계를 드러낸다. 일본은 달랐다. 마쓰카타의 지조 개혁을 재정으로 세우고, 자유민권운동이라는 밑으로부터의 응답으로 흡수하고, 야마가타의 징병제로 군을 만들고, 끝내 불평등조약 재협상까지 관철한다.
부록이 이 비교의 결정타에 가깝다. 야마가타, 이토, 오쿠마, 이와쿠라가 제출한 입헌정체 건의서들, 야마가타의 군비 상소와 주권선, 이익선 연설, 그리고 후쿠자와의 '탈아론' 전문까지 일곱 편이 실려 있다. 30~40대의 메이지 지도자들이 헌법도입 속도를 두고 벌이는 논쟁의 수준을 읽고 나면, 조선 의정부의 대책인 "오늘 날의 계책은 오직 절약하는 것일 뿐"이 다시 떠오른다. 이노우에가 이홍장에게 보낸 조선 조정 쇄신안이나, "조선 사람들 사이에서 저항 정신이 거의 죽어버린 것 같다." 던 미국 공사 딘스모어의 1887년 전문은 뼈 아프게 다가온다. 그리고 조선의 잃어버린 10년의 끝에 김옥균의 암살과 부관참시가 있고, 그 시신을 둘러싼 일본 여론의 폭발이 청일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당긴다. 저자는 결론에서 이 10년이 세력균형 덕에 조선에게 오히려 기회의 창이었음을 지적한다. 그 창을 닫은 것은 외세이기 이전에 희대의 약탈적 정권이었다는 것이 저자가 내리는 판정이다.
아쉬움에도 읽어야 하는 이유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방대하다는 것이다. 칼뱅 전기와 종교개혁사에 할애된 분량은 독자에게 시험처럼 느껴질 수 있따. 저자 또한 머리말에서 질문이 꼬리를 물어 책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실토한다.
하지만 그 방대함이 이 책의 논증 방식이다. 저자는 결론을 먼저 던지고 사료로 때우는 게으름뱅이 저자가 아니라, 독자를 제네바와 에든버러와 암스테르담과 매사추세츠까지 데리고 다니다가 8장에서 조선으로 데려와 "이제 알겠지?" 라고 묻는 저자다. 그 여정을 마친 독자는 같은 10년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본다. 이것은 과거에 대한 책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책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누군가에게는 이 글의 신뢰도가 다소 낮아보일 것이다. 과거의 나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 대한 생각을 짤막하게 남긴 후, 마지막 즈음에 함재봉 교수님의 한 마디에 매료되어 유튜브 알고리즘에 뜨면 무지성 좋아요를 누를 것이라 고백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고 부족해 보이는 부분은 <한국 사람 만들기 3>을 직접 읽어보고 생각을 보완해 나가는 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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