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 3기] 마샤알라(낙원-압둘라자크 구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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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샤 알라 (Mā shāʾ Allāh, ما شاء الله)
”우리 모두는 저렇다. 무지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편협한 존재들이다.“ _본문 P.174
0. 유수프는 사려 깊은 관찰자이다. 예민한 감수성과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이고, 아미나가 말했듯 ‘몽상가’이기도 하다. 성경 속 혹은 꾸란 속, 요셉 또는 유수프가 그랬듯 그도 심오한 꿈을 꾼다. 12세가 되던 해, 고향 카와는 유난히 가물었고, 처음으로 기차역에서 유럽인과 마주친다. 그리고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에게 떠밀려 부유한 상인과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동행인은 아지즈란 인물로 대 상단을 이끄는 ‘타지리 음쿠부와(상인 지도자)’이다. 사이드(주인)이기도 했던 그는 유수프를 집이라는 자궁에서 빼내어, 그의 운명을 미지의 숲으로 던진다. 그곳은 추악한 들개와 사악한 주술과 가혹한 불신과 뱀과 쇠를 먹는 악마가 도사리는 ‘사파리(여행)’였다. 유수프는 그 여정 속에서 상대를 혐오 嫌牾 하느라, 자신의 염오 染汚는 눈이 먼 채, 신의 정원 안에 안주하려는 어리석은 이들을 목격한다. 정원 밖 사방이 화염으로 점점 좁혀오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말로도 내뱉으면서도 말이다. 어느 날 유수프는 자신의 세상이 막다른 골목에 이른 광경을 마주하자, 자신을 둘러쌌던 ‘멍에와 장벽’를 깨달으며 처음으로 낙원 밖을 바라본다.
1. 『낙원』의 배경은 19C 말, 동아프리카 지역이다. 각지에서 스며든 다채로운 배경의 출신을 가진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주요 사건의 단서들을 제공하곤 한다. 그들은 제각기 신념과 관념이 있었고, 그것이 이루는 틀로 세상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성향은 혐오를 불러오는 이질감으로도 작용하여 다툼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합의할 거래가 있을 시, 매번 목표를 향해 날이 선 긴장을 견여야 했다. 모닥불 앞 둘러앉은 상인들이 펼치는 외부 세계에 관한 경험담은 생경함과 경이로움으로 가득했다. 좋든 싫든 매혹된 사람들은 탄성과 두둔과 야유와 비난 등으로 그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때론 드러나게, 때론 비밀스럽게 오가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유수프는 아직 발이 닿지 않은 세상을 그려보며 그 위에 상상을 덧입힌다. 그러던 어느 날 상단과 함께 떠난 여행길은 만만치 않았다. 그곳에서 내륙인들의 미신에 대한 맹신을 체감했고, 욕망의 어리석음이 불러온 분열을 목격하며, 이방인의 호의를 탐하면서도 경멸하는 비열한 술탄들의 술책에 시달린다. 그리고 종종 이빨을 드러낸 음중구(유럽계 백인)에 관한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하듯 곧 모든 것을 그들이 가져갈 것이란 암울한 예언을 서슴지 않고 주고 받는다.
2. 동아프리카 연안에서 도시국가 형태로 번영한 스와힐리 문명은, 인도양의 계절풍으로 인하여 해상 무역이 발달하여 반투족과 페르시아, 아랍 그리고 인도와 중국 등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융합한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선박이 킬와(동아프리카의 주요 항구도시)에 도착하자, 유럽 진출이 시작되며 모든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오만은 이에 대항해 군사력으로 해안을 장악하였고, 잔지바르(현재의 탄자니아 지역)를 중심 무역지로 삼아 술탄들이 그곳을 통치하게 하였다. 그들은 상업(상아), 노예, 향료무역을 중심으로 기존 무역의 구조를 재편하였고, 노예는 내륙에서 조달하여 노동력으로 삼거나 수출하였다. 유럽 세력은 잔지바르 세력을 약화하기 위해 몇 가지 명분을 내세우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노예제 폐지’였다. 유수프가 아버지 빚에 대한 레하니(담보)가 되었을 무렵은 술탄들이 독일인 Big Man이 가져온 ‘정부의 법’에 의해 권위와 전통을 잠식당하는 시기였다. 유럽 열강은 이렇게 스와힐리 문명과 계절풍을 분리하는 것을 시작으로, 나아가 해안과 내륙을 단절시키며, 전략적으로 그들의 정체성에서 미개 未開함마저 끌어낸다.
3. 음중구는 ‘뱀들과 쇠를 먹는 자’들이었다. ‘뱀’은 이슬람 문명권에선 ‘사탄이나 신의 기적이나 경고’를 의미한다. 그리고 유럽의 게르만 신화에는 ‘요르문간드’란 거대한 뱀이 등장한다. 그 뱀은 자신의 입으로 꼬리를 문 채 세계의 경계를 감싼 형상으로, 질서와 혼돈, 완결과 파괴, 재생과 순환을 의미를 갖는다. 후세인과 하미르, 칼라싱가는 대화 중에, ‘유럽인은 수백 년 동안 세계를 먹고 살아 강하고, 그러므로 멈출 수 없으며, 곧 젊은이들이 그들의 법과 역사를 암송할 것’이란 이야기를 나눈다. 아지즈 일행이 마지막 술탄에게 향할 때, 유수프는 배 위에서 저무는 태양이 비추는 붉은 절벽을 보게 된다. 유수프는 후에 그곳이 천국의 문 같았다고 회상하지만, 그곳은 오히려 칼릴이 말해줬던 ‘곡과 마곡’(사탄 통치하에 있는 두 세력)이 사는 ‘세상 가장자리의 벽’ 같았다. 그곳을 지나며, 상단의 여정은 점차 깊은 지옥 길로 들어선다. ‘화염 벽’의 지점은 기존의 세상이 정화되어 소멸하고, 재창조되는, 뱀의 입과 꼬리가 만나는, 일종의 ‘문 門’ 으로 코스타 (아지즈 저택이 있는 곳)에 들이닥쳤던 독일 장교도 반대편에서 분명히 그곳을 넘어왔을 것이다. 숨어있던 유수프가 구멍을 통해 엿보았던, 고통스러운 상흔에 벌어진 그의 잔인한 미소는 마치 그가 경계에서 넘어온 곡과 마곡임을 암시하는듯 했다.
4. ‘쇠’는 ‘인간의 이성’이다. 침략에 있어, 창, 검, 그리고 탄환으로 진화된 무기는 최종 결과물로 승자에게 ‘새로운 질서와 역사의 기록을’을 선사했다. 동아프리카는 유럽 대륙보다 깊은 역사적 흐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럽 열강은 더 발전된 무기와 기술로 빠르게 식민 지역을 장악한다. 그러나 진정한 정복이 가능케 했던 것은 ‘생소한 질서’가 조성한 환경이었다. 유럽인은 어디에서든 ‘감옥, 교회, 세금 징수소’을 가장 먼저 지었고, 토착민들에겐 노예 상인들로부터 지켜주러 왔다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가장 익숙한 적을 지정해주었다. ‘지식과 속임수로 토착민보다 한 수 앞섰던’ 그들은 ‘단단하면서도 유연해 도구 제작에 적합한 쇠’를 이용하여, 점점이 그들을 잇고 있던 상인들의 루트를 죄어가며 아프리카 대륙을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썰어 먹기 좋은 형태로 철저히 분리하였다.
5. 유수프 아버지는 상인에게 자신의 채무로 인해 어린 아들을 팔았고, 아지즈는 인도인에게 빌린 채권을 갚기 위해 보배롭던 코뿔소 뿔을 팔았고, 술탄은 유럽인에게 훈장을 받기 위해 자존의 터전인 영토를 넘겼다. 문득 ‘마트료시카(러시아 인형)’가 떠오른다. 일정 패턴의 순환에 갇힌다는 것은 장벽과 멍에에 결박됨을 의미한다. 장벽과 멍에는 순종과 무기력을 적응시키고, 순리와 영원에 대한 환영을 가져온다. 게다가 자원마저 한정된다면, 인간은 결핍에 사로잡히고 자신의 처지에서 누릴 수 있는 최선의 형태를 추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때론 치우친 욕망은, 장신구 하나에 친인척과 이웃을 파는 선택조차 하게 만든다. 하지만 과연 그만한 값을 치르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가? 확실했던 것은 그 ‘욕망의 숲’에 들어선 이들은 낙원은 상상하되 이를 수는 없었다.
6. 사람들은 유수프가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이 신의 축복 때문이라 믿었다. 여러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마치 행운의 부적 같던 그를 사람들은 원하고 좋아했다. 상단에 가장 큰 위협이었던 차투마저 유수프에겐 예외적으로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 그는 특별히 한 일 없이 늘 ‘넌 잘하고 있다’라는 칭찬을 듣는다. 그것은 유수프가 산에서 녹색 빛을 보며 신비함을 느꼈던 것처럼, 사람들도 그를 보며 '구원'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진창 위로 핀 아름다운 연꽃 한 송이를 바라보듯, 그들은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신의 뜻을 그 소년을 통해 목도 하는 기분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유수프는 전율하는 현실 속에서 그 누구보다 온몸을 긴장하며 반응할 뿐이었고, 뒤늦게 배운 꾸란에도 심취는 했지만 신앙에 도취되진 않는다. 그는 독일 장교와 아스카리 (유럽군에 속한 식민 현지 군인) 가 지나간 흔적 앞에서 경계하며 똥을 먹는 들개들의 눈빛에서 혐오를 느끼는 동시에 집을 떠나오며 기차간에서 꿨던 꿈을 불현듯 떠올린다. 그제야 무엇이 자신을 억눌러왔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그것은 두려움에 대한 무기력이거나 혹은 무기력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신의 자비가 비춘다 한들 의지 없는 기도는 허상만을 맺는다. 유수프는 이제 이집트가 아닌 유럽으로 향할지도 모른다.
7. 『수라 ‘야 신’[Ya-Sin, 제36장]』 에는 유일신 알라의 전지전능함과 선지자가 전파하는 예언의 정당성, 그리고 믿음과 불신에 이르는 부활 혹은 심판에 관한 내용의 핵심이 담겨있다. ‘마샤알라’는 ‘알라의 뜻이 그렇게 되도록 하셨도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신의 뜻’이 제국주의 침략의 정당성을 대변할 순 없다. 물론 그들은 새로운 세계 질서를 형성하며 구시대의 체제를 붕괴하는 과정에서 속박되었던 많은 노예들에게 자유를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침략자들이 권력과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내세운 명분이었을 뿐, 상생의 의지는 아니었다. 아지즈가 칼릴과 유수프의 아버지들에게 다시 찾아갔을 무렵, 그들은 모두 죽은 후였다. 결국 그들의 담보는 상실과 방치로 인해 세상에 떠밀린 것이다. 나아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게 만드는 패턴은 마치 프로그래밍 된 욕망의 여정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제국주의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누구에게 무엇을 담보 잡혔는가? 이 질문은 낙원의 유수프만이 정확히 답변해 줄 것 같다. 때론 현실보단 이러한 픽션 속에서 세상을 더욱 신랄하게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 같다. 아지즈의 뿔이 ‘욕망의 단면’을 품었다면 ,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소설은 ‘시대의 단층 斷層’을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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