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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문장3기] 낙원은 어디에 있는가(낙원-알둘라자크 구르나)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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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태선영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367회   작성일Date 25-10-15 14:31

    본문

    낙원은 어디에 있는가


    혼돈의 항구, 진지바르

     

    바람은 바다에서 불어오고, 붉은 흙먼지가 거리를 떠다닌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진지바르는 아프리카 동쪽 해안인 스와힐리 해안의 중심지로 오랜 세월 다양한 문화가 만나는 항로였다. 이곳은 포르투갈, 오만, 영국, 독일의 순으로 오랜 세월 식민 통치를 받았고, 그 속에서 다층적인 문화와 언어가 뒤섞인 공간이었다. 아프리카 본토 흑인, 이슬람계, 인도계가 뒤섞여 다민족, 다인종, 다언어 생활을 이루었다.

    그러나 다양성 속에서 사람들은 국가의 틀이 명확하지 않은 만큼 정체성은 혼란스러웠고 주된 종교인 이슬람교가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대신했다.

     

    어린 노예 유스프의 자유을 향한 열망

     

    소설은 독일 식민지에서 영국령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시작된다. 그 다양성 속에서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의 한가운데는 조용하지만 깊이 사색하는 소년 유수프가 있다.

    주인공 유수프는 아버지가 빚을 갚지 못해 12살의 어린 나이에 채권자인 상인에게 노예로 팔려간다. 그는 주인의 가게에서 일하며 같은 처지의 소년 칼릴에게 일을 배우고 의지한다. 칼릴은 유수프를 동생처럼 아끼지만, 주인에게 충성하며 체념하여 노예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반면 유수프는 안주하지 않고 자유를 향한 열망을 간직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부모의 곁을 떠나 노예가 되면 주인이나 동료를 의지하여 노예 생활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유수프는 안락하지만 억압된 삶을 버리고, 한밤중에 독일군 행렬 쪽을 향해 길을 떠난다. 작가는 그의 결심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의 여정 속에서 자유와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부모도, 재산도, 지지기반도 전혀 없는 어린 소년의 발걸음은 두렵고 외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기에 떠날 수 있었고, 자유의 시작이 되었을지 모른다.


    진정한 낙원은 어디에 있는가

     

    낙원이라는 제목은 이 지역 사람들의 고달픈 현실을 반어적으로 드러낸다. 부유한 상인의 아름다운 정원은 유수프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었지만 여주인의 감시와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 진정한 낙원은 주인의 정원에 있지 않았다. 칼릴의 여동생이 말했듯 이곳은 모든 것을 다 앗아간 지옥이었다. 안락함은 종종 안주를 낳고, 그 실체를 보지 못하게 하는 허상일 수 있다. 순간의 편안함은 존재할 수 있지만 이들에게 삶은 끝 없는 투쟁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칼릴이 정신을 놓은 듯한 우스꽝스러운 말과 행동은 운명의 아픔을 달래려는 눈물겨운 몸부림일 것이다.

     

    유수프가 불안과 고통을 감수하고 길을 나서는 것은 그것이 자신으로 살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유수프의 떠남을 통해 진정한 낙원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자유는 사회적 통념, 소유욕, 인정욕,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 등에 의해 가려진다. 이러한 것을 획득하여 더 행복해지려고 하지만 오히려 욕구가 지나쳐 구속될 때가 많다.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안정의 틀을 벗어나 좀 더 자신의 욕망,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몸짓에서 비롯된다.

     

    갸녀리고 아름다우며 말 없는 16살 소년 유스프의 당찬 면모는 독자를 놀라게 한다. 육체적 강인함과 외형적 조건이 내면의 진실성과 가깝다고 할 수 없다. 그에게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얼마나 외부의 통념에 길들여져 살아가고 있는가’, 퇴색하지 않은 순수성을 간직하고 있는가’.

    유수프의 떠남은 잃어버린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꿈꾸고 도전하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진정한 낙원은 불안을 감수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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