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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 비트겐슈타인이 한 말이다. 누군가는 내 감정과 생각을 언어로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것이므로 침묵하겠다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런데 난 이건 잘못 해석한거라 생각한다. 물론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죽마고우가 아니어서 잘 모르지만, 그는 세상 사람들이 벙어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 본 뜻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침묵하고 있으라는 게 아닐까.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사실에 대해 오해하거나 왜곡하여 받아들이는 걸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그가 살고 있던 세상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 그가 살던 세상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할 줄 알았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지 못했을까? > 확인되지 않은 동네 가십거리를 전파하기 바쁜 마당발 아주머니였을까? > 알맹이 없는 무용담만 늘어놓기 바쁜 주정뱅이 아저씨였을까? > 말하는 능력이 덜 훈련되어 두서없이 조잘거리는 꼬맹이들이었을까? >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오스트리아 린츠의 실업학교를 다녔지만 성적 미달로 쫓겨난 아돌프 히틀러였을까? > > 히틀러의 연설에는 힘이 느껴진다. 어쩌면 무대 위의 테너처럼 압도적인 성량을 갖춘 덕분일 지도 모른다. 연설에서 힘이 느꺄진 이유를 메시지가 아닌 성량이라 한 이유는 서점에 진열된 히틀러 관련 서적에서 볼 수 있다. 히틀러 관련 책을 들여다 보면, 히틀러의 반대편에 서있었던 러시아의 혁명가인 블라디미르 레닌을 시작으로 니콜라이 부하린, 레프 트로츠키 등의 인물들처럼 지적인 엄숙함을 요구하는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 왜 그럴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 하나는 성량이 좋아 강한 에너지를 전달하는데 능했지만, 진짜 알맹이라 할 수 있는 지식이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히틀러의 메시지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논하는 게 두려워 모든 책들이 침묵하는 것이다. > 나는 전자라고 생각한다. > > 왜 지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히틀러의 말에 힘이 있었을까? 성악가를 연상케 하는 훌륭한 목청도 있었지만, 그의 말은 단조롭고 반복적이며 다소 과장되었다. 이는 마치 유튜브의 쇼츠, 인스타그램의 릴스와 같은 짧고 강렬한 콘텐츠로 비유할 수 있겠다. 그래서 대중들을 사로잡기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히틀러의 말에는 지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대중을 끌어당길 수 있었을까? 난 은유의 힘이라 생각한다. > >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히틀러에게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유명하다. 그렇다 보니 히틀러의 산문에서도 전쟁론에 나온 표현인 ‘전장의 안개’, ‘정책의 연속인 전쟁’ 등의 표현들을 은유적으로 인용한 걸 볼 수 있다. > > “국민의 평화로운 경제력으로 다른 국민을 정복할 수 없다고 믿거나, 경제적으로 약한 국민이 스스로 먹고살 힘이 없어져서 경제적으로 더 강한 국민에게 죽임 당하는 걸 원치 않는다면, 평화적인 경제적 안개가 찢기고 전쟁이란 정책의 연속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 > ‘평화적인 경제적 안개가 찢기고’, ‘전쟁이란 정책의 연속’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연상시키는 은유적 표현이다. 여기서 문제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은유인지 헷갈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고로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 이런 글들은 히틀러의 <나의 투쟁> 에서도 종종 볼 수 있가.) 다만, 대중들을 자극하고 새로운 바람을 이끌게 만드는 키워드인 <경제력>, <강한 국민과 약한 국민> 그리고 <전쟁>을 활용한 덕분에 환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 세 가지 키워드는 당시 독일인들의 발목을 잡고 있던 베르사유 조약을 은연 중에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 히틀러가 제대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지 않았고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음에도 환호가 쏟아졌다. 그 결과 비트겐슈타인이 살던 사회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지 못하는 풍경이 그려진 게 아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열심히 말하던 히틀러는 진짜 말을 해야 할 순간에 조용히 자살했다. > >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고 했다. 난 그가 왜 이 말을 뱉었는지, 그리고 히틀러를 보고 한 말인지는 모른다. 이를 추적하여 연구하거나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주위 히틀러 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한 말은 아니었을까. 우리 대한민국에도 히틀러 같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머물러 있기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지금 내 곁에 남아 있는 게 아닐까. > > 최진석 교수님께서는 종종 과학의 가치를 논하셨다. 과학은 객관적 사실에 가까워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말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라고 난 생각한다. 물론 어떤 사람은 과학이 제2의 종교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경계하기도 한다. >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유명 광고 문구는 긴 경험과 테스트를 바탕으로 침대를 만들었다는 뜻을 품고 있다. 이처럼 과학은 우리 사회에서 믿음과 체계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렇다 보니 ‘과학적’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수긍하게 돼버리는 현실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이게 과학을 경계하는 사람들의 주요 논지다. > 과거는 종교를 벗어나 과학으로 나아갔다. 앞으로 미래는 과학을 벗어나 어디로 갈까? 최진석 교수님의 말씀처럼 초과학이라는 곳을 향해 나아갈까? 아니면 초과학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나아갈까? > > 생각해보니 나는 비트겐슈타인과 히틀러에 대해 자세히 연구하지도 공부하지도 않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것인데 침묵하지 않고 이렇게 떠들어버렸다. > > 오늘은 히틀러 1일차다. > 하지망!!!!!! 내일은 비트겐슈타인 1일차로 살 것이다!!! > ^_^_^_^_^\^_^_^!!!!!!!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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